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는 말을 시작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의 비선(秘線)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정보사를 중심으로 계엄 이후 계획들을 치밀하게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수사를 명목으로, 계엄 다음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예 요원을 투입하고, 비공식 조직인 ‘수사 2단’을 편성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계엄의 밤이 지나고 부정선거 수사를 명목으로 선관위로 이동할 계획이었고, 그를 ‘보좌’할 인원도 배치됐다. 특히 그는 자신의 가방에 민간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비화폰’을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노 전 사령관은 선관위로 이동해 본격적인 부정선거 의혹 확인에 나설 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경기 성남시 판교 100여단에서 대기하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정보사 김봉규 대령에게 “계엄을 위해 선발한 인원 중 1명을 내일 아침 노 전 사령관에게 보내서 모시고 오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정보사 소속 정성욱 대령은 변호인을 통해 “4일 아침에 차량으로 노 사령관을 모시고 오라는 것을 들었다”며 “제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을 ‘모실 자리’이자 문 전 사령관이 명령을 내린 장소는 선관위로 파악됐다. 이같은 지시는 노 전 사령관의 검찰 조사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검찰은 ‘김 대령이 정보사령부 소속 A소령에게 수사단장 행정 보좌관으로서 오전 5시 40분까지 선관위로 모셔 오는 등 노 전 사령관의 수행 임무를 부여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대원들 역시 선관위 이동 계획을 공유받았다. 문 전 사령관은 정보사 대원들에게 “선관위 직원들을 수도방위사령부 내에 있는 벙커로 옮길 것이며, 버스를 준비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노 전 사령관이 내렸다는 계엄 이틀 전 문 사령관에게 ‘선관위 직원들을 수방사 B1 벙커로 옮길 차량을 준비하라’는 지시와 이어진다.
이 밖에도 선관위 직원들의 체포와 조사에 케이블타이나 야구 방망이 등의 사용을 계획한 정황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평화 계엄’을 주장하고있지만, 정작 선관위에 투입됐던 정보사 대원들은 무력을 동원해 계엄 다음날 계획까지 미리 세운 것이다.
노 전 사령관은 이번 내란사태의 비선 설계자로 지목된다. 그는 합동수사본부 산하에 비공식으로 ‘수사 2단’을 꾸리고 계엄 당일 선관위 서버 확보를 시도했다. 노 전 사령관과 과거 근무 인연이 있는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과 방정환 전 국방부 혁신기획관은 각각 수사2단장·부단장에 오를 예정이었다.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을 이끈 노 전 사령관이 계엄을 사전에 준비한 것은 물론, 계엄 성공을 전제로 수사 계획을 세웠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민간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비화폰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계엄이 무산된 지난해 12월 4일 오전 방 기획관은 100여단 사무실에서 문 전 사령관에게 “노 전 사령관 가방 2개를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고,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에게 가져다주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가방 안에는 도·감청이 불가한 비화폰이 들어있던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후 방 기획관은 경기 안산의 노 전 사령관의 자택으로 이동해 가방을 건넨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보사 정성욱 대령은 변호인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정 대령은 “계엄이 무산된 이후 새벽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문 전 사령관과 내 사무실로 갔다”며 “사무실에는 이미 구 여단장과 방 기획관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안에서 방 기획관이 문 전 사령관에게 노 전 사령관의 가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문 전 사령관은 가져다주라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실제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의 핵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계엄 전날엔 약 4시간, 계엄 당일 아침엔 2시간 동안 김 전 장관의 공관을 찾아 머물렀다.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 선포 후 ‘수사 2단’을 설치해 중앙선관위의 부정선거 관여 의혹 등을 수사할 구체적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게 수사 결과다. 노 전 사령관은 ‘롯데리아 회동’ 전에도 꼬박꼬박 김 전 장관의 공관에 들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포고령을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건 많지만, 어차피 이 계엄이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렵고 그러니, 집행 가능성은 없지만 상징적이라는 측면에서 그냥 놔두자고 말하고 놔뒀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장관 역시 “오래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계엄 당일 정보사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철저한 계엄 준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 대령은 또 롯데리아 회동에서 노 전 사령관이 “12월 4일 선관위에 가면 경찰하고 특전사가 경계하고 있을 것이고 수사는 방첩사에서 한다”고 한 말도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검찰은 이같은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롯데리아 회동’ 참석자 중 한 명인 김봉규 대령과 정 대령을 함께 불러 대질조사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