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전농 측 트랙터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시민들도 현장을 찾아 농민들을 지지하며 이틀 간 함께 집회를 이어갔고, 결국 관저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틀 간 이어진 대치…관저 300m 앞에 도착한 트랙터
전농은 지난 16일 윤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정부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기 위해 전남 무안과 경남 진주에서부터 ‘릴레이 트랙터 행진’을 시작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19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이 물러나고 한덕수 체제가 들어선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양곡관리법 등 농민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며 “농민을 죽이는 거부권은 절대 안 된다고 호소했음에도 이 정부가 또다시 농민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5일에 걸쳐 행진한 끝에 21일 낮 12시쯤 경기도 과천에 도착했다. 이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어지는 남태령고개를 지나는 도중에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도심 교통 마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전농 측에 ‘제한 통고’를 하고 진입을 막았다. 전농 측 관계자는 “전남, 경남에서 올라올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수원에서 과천으로 넘어올 때도 경찰이 앞장서서 유도하고 신호 체계도 만들어 줬다”며 “남태령고개를 내려오니까 차벽으로 막았는데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대치 현장에서는 참가자와 경찰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트랙터를 이용해 경찰 버스를 들어 올리려고 한 운전자를 경찰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참가자 2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 입건되기도 했다.
이틀에 걸친 20시간 넘는 대치 끝에 경찰은 이날 오후 4시 40분쯤 차벽을 거뒀다. 이에 트랙터 20여 대, 화물차 40여 대는 남태령역에서 출발해 사당역까지 행진을 재개했다.
이 중 트랙터 10대는 사당역을 지나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약 300m가 떨어진 곳까지 행진한 뒤 멈춰 섰다. 농민들은 추가 행진 없이 트랙터 방향을 돌렸고, 귀향길에 오를 예정이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3만 시민도 ‘환호’
많은 시민들이 모이자 이날 오전 10시 남태령역 인근 도로에서 전농을 비롯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봉준투쟁단,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을 규탄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오후 3시 기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약 3만 여 명으로 추산됐다.
남태령역 인근에서 집회에 참여한 30대 김모씨는 “유튜브 라이브로 남태령역 상황을 지켜보다가 약속을 취소하고 현장에 나왔다”며 “양곡법 개정 문제도 최근에 계엄 이후로 관심을 갖고 알게 됐다. 시민들이 없으면 농민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장에 나온 이유를 밝혔다.
지난 19일 전남 순천에서 출발했다는 농민 오동식(55)씨는 “21일 낮까지만 해도 남태령역에는 농민들밖에 없었는데 헌법재판소 앞 집회가 끝난 시간부터 시민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며 “시민들이 없었으면 우리 농민들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시민들이 우리를 막아줘 마음이 뭉클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트랙터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도착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남태령역에서 출발해 한강진역에 도착한 시민들은 트랙터가 도로를 지나가자 박수와 함께 큰 환호를 보냈다.
현장 곳곳에는 손난로, 물, 김밥 등 집회 인원들을 위한 물품이 배치됐다. 추운 날씨 탓에 의료진도 곳곳에서 대기하며 비상약을 나눠주면서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했다.
일산에서 한강진역을 찾은 유현미(50)씨는 “어제 남태령역은 너무 추워서 못 갔는데 어린 20대 친구들이 갔다고 해서 밤새 잠을 잘 못 잤다”면서 “(20대 친구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벅차서 현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